[김은영 목사]본론, 로마서에 나타난 바울의 복음 이해

[논문]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과 복음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

김형기기자 kk97850@naver.con | 기사입력 2018/11/29 [07:31]
▲ 울진한빛교회 김은영목사    

1. 로마서에서의 복음의 위치 
  
‘이신 칭의’를 로마서의 주제로 보았던 루터(Luther)의 신학 이래 로마서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나타났다. 20세기 초엽 슈바이처(A. Schweitzer)는 이신 칭의가 유대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전투교리’에 불과하다 보고, 5-8장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과 ‘성령의 사역’을 로마서의 중심 주제로 찾았다.

 

캐제만(Käsemann)은 루터파 전통 위에 칭의 언어를 ‘하나님의 의’(the righteousness of God)라는 범주 안에 집어넣었다. 그가 말하는 ‘하나님의 의’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계시되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을 뜻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역사 속에 계시되고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1:16-17), 사람들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그래서 캐제만은  ‘하나님의 의’의 계시를 로마서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 66)

 

샌더스(E. P. Sanders)는 슈바이처의 견해를 좇아 5-8장에서 개진되는 ‘참여’(participation)를 로마서의 중심 주제로 강조했다. 가장 최근의 견해는 ‘바울에 관한 새로운 전망’(New Perspective on Paul)이라고 불리는 해석이다. 이 견해를 좇는 학자들은 유대교에 대한 바울의 비평을 전혀 새로운 해석에서 재평가하고, 구원사 속에서 유대인들이 담당한 역할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 외에도  로마서의 중심 주제를 ‘하나님’, ‘소망’, 그리고 ‘구원’ 등의 술어에서 찾으려고 시도하는 노력들이 있다. 67)

 

66), 67) 이한수, 「로마서 주석 」, pp. 38-39.

 

이처럼 로마서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견해들을 아우르며, 로마서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중심 주제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복음’이라고 본다.

 

슈툴마허는 그의 저작「로마서 주석」에서 로마서의 주제와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서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서신의 서두인 1장 1-7절과 이 머리말을 다시 한 번 회상하며 꽤 신중하게 표현된 서신의 말미인 16장 25-27절에 의하면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의 계시인 바울에게 맡겨진 복음이다(1:16-17).” 68)

 

68)  P. 슈툴마허, 장흥길 역, 「로마서 주석」,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2002),  p. 35.

 

율법은 유대인과 이방인, 온 인류를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 아래 신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복음은 그 율법의 정죄와 심판으로부터 온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으로 로마서에 계시된다(1:16-17). 그 복음의 영향아래 온 인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으로 들어가며, 참된 자유와 해방을 누린다(8:1-2).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한 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12:5), 평화로운 공존을 누린다(15:5-7).

 

복음은 로마서 전체에 녹아들어 있다. 그러므로 복음은 로마서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주제로 볼 수 있다. 복음은 율법과 함께 로마서의 중심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2. 단어 ‘복음’(eὐaggevλιοn)의 사용 용례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자신의 ‘복음’을 ‘율법’과 함께 로마교회에 설명한다. 율법에 비해 사용 빈도는 훨씬 낮지만 복음의 내용은 율법의 사용 용례를 압도한다. 바울이 진술하고 있는 “복음”이란 용어는 헬라어로 “유앙겔리온”(eὐaggevλιοn)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기쁜 소식”(good news)이다. 69)
 
바울을 로마서 전체를 통하여 복음이란 용어를 15회 사용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복음의 사용 용례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표현한다(1:1, 15:16에서 2회 사용). 레온 모리스(Leon Morris) 박사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이 서신서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로마서는 하나님에 대한 책이다. 다른 어떤 주제도 하나님이라는 주제처럼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없다. 바울은 이 서신서에서 다루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킨다. 성경의 어떤 다른 책도 그와 같은 것은 없다.’ 70)

 

그러므로 기독교의 좋은 소식은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것은 사도들이 고안해 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계시하고 맡기신 것이다. 71)

 

69) 정인찬 편, 「성서대백과 사전」, p. 398.
70) Morris(1988), p. 40.  존 스토트, 정옥배 역, 「로마서 강해」(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1996), p. 52. 재인용.
71) 존 스토트, 정옥배 역, 「로마서 강해」, p. 52.

 
두 번째, 복음의 사용 용례로 바울은 복음을 그 아들의 복음, 곧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표현한다(1:9, 15:19에서 각각 1회씩 사용). 바울은 로마서 1:2에서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약속하신 것이라”했고, 1:9에도 “그 아들의 복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복된 소식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루터가 이 구절에 대한 주석에서 말하듯이, ‘여기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문이 활짝 열린다. 즉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72) 칼빈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쓴다. ‘복음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어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이동한다면 그것은 복음으로부터 물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73)

 

세 번째, 복음의 사용 용례로 바울은 복음을 나의 복음 곧 내 복음이라고 표현하다(16:25, 2:16에서 각각 1회씩 사용). 바울은 2:16에서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여기서 바울은 복음을 심판과 연결시키고 있다. 복음은 심판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심판의 실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죄인들을 향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복음의 요청이 불필요하게 되고 또한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도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것을 ‘나의 복음’이라 부른다. 이것은 그가 복음을 고안해 냈다거나 자기만의 독특한 소유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74)

 

72) Luther(1515), p. 4. 존 스토트, 정옥배 역, 「로마서 강해」, p. 53. 재인용.
73) Calvin, p. 4.  존 스토트, 정옥배 역, 「로마서 강해」, p. 53. 재인용.
74) 이한수, 「로마서 주석」, pp. 225-226.
 
여기서 바울의 복음의 기원을 살펴보자. 바울은 갈라디아서 1:11-12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증언한다. 이는 그가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았다는(갈 1:12) 고백이다.

 

바울의 복음은 “인간적인”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을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도 아니고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도 아니고(갈 1:11)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이 “내가 이방인들 중에서 자기 아들을 복음으로 선포하게 하기 위하여 내게 기쁜 마음으로 자기 아들을 계시해 주셨을 때” 받았기 때문이다. 이 복음과 사도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육과 피와 의논하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갈 1:16). 75)

 

이러한 바울의 주장들을 근거로 김세윤은 바울의 복음의 기원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서 찾고 있다. 바울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고, 그 복음의 내용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과 바울의 복음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이며, 선하신 하나님의 의의 선물이다.

 

75) 김세윤, 「예수와 바울」(서울: 도서출판 제자, 1995), p.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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